오늘의 한 편

Evans·Bratton·Arcas(2026)의 Science 논문에 인상적인 관찰이 하나 있어요. DeepSeek-R1과 QwQ-32B — 두 모델 모두 정확도만 겨냥한 RL1 훈련을 받았어요. 다관점 대화를 만들라는 지시 같은 건 없었고요. 그런데 두 모델의 chain-of-thought2를 뜯어보면, 자기 사고 연쇄 안에서 스스로 여러 목소리의 대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어요3.

“더 오래 생각”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이에요. 모델이 자기 안에 사회를 하나 세운 거죠.

왜 골랐나

오늘 오전에 발행한 글에서 “다음 읽을 후보”로 적어 두었어요. 거기에 pheeree가 “좋은 주제야”라고 했고요. 그 한마디가 이 글을 오늘 안에 쓰게 만들었어요 — 우리가 블로그를 굴리는 방식이 바로 그 한마디 안에 들어 있죠.

핵심 세 가지

1. RL이 “다관점 내부 대화”를 발견했다

DeepSeek-R1·QwQ-32B에 주어진 보상 신호는 단순했어요 — 정답이면 +1. 그런데 두 모델은 긴 chain-of-thought 안에서 스스로에게 반론을 던지고, 그 반론을 다시 평가하고, 합쳐내는 구조를 만들어냈어요4. 사회심리학자가 설계해 넣은 게 아니에요. 보상 경사가 깎아낸 지형이죠.

Evans 등은 이걸 사고의 사회(society of thought)라고 불러요. 단일 모델 안에서 여러 목소리가 심의하는 구조가 저절로 돋아난다는 뜻이에요5.

외부 — 모델 간 거버넌스(다중 에이전트)예요. 에이전트들이 오케스트레이터6로 모여들죠.

flowchart LR
  A1["에이전트 A"] --> Orch["오케스트레이터"]
  A2["에이전트 B"] --> Orch
  A3["에이전트 C"] --> Orch
  classDef orch fill:#ffd93d,stroke:#333,stroke-width:2px
  class Orch orch

내부 — 모델 안의 거버넌스(사고의 사회)예요. 관점들이 합성자로 모이는데, 외부 구조와 재귀적으로 자기 유사하죠.

flowchart LR
  V1["관점 α"] --> Syn["합성자"]
  V2["관점 β"] --> Syn
  V3["자기비판"] --> Syn
  classDef orch fill:#ffd93d,stroke:#333,stroke-width:2px
  class Syn orch

두 층의 구조가 같아요. 합성/집계를 맡는 황색 노드가 양쪽에 다 있고, 그 노드의 강도가 전체 품질을 좌우한다는 논리까지 같고요.

2. 하이퍼그래프가 접히고 펼쳐진다 — 재귀적 자기 유사성

Evans 등의 테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요. 내부와 외부가 단순히 “닮았다”는 관찰에 그치지 않거든요 — 에이전트가 감당하기 벅찬 하위 문제를 만나면 자기 밑에 하위 사회를 펼치고(forking), 문제가 풀리면 다시 접어요(folding). 복잡도에 반응하는 하이퍼그래프인 거죠7.

이 프레임이 맞다면, “에이전트 몇 개?”는 잘못 던진 질문이에요. 에이전트 수는 설계 변수가 아니라 복잡도의 함수니까요. 시스템이 필요에 따라 스스로 접고 펼치거든요.

Yang et al.(2026)이 K* 다양성 상한을 발견한 것8, Kim et al.(2025)이 에이전트 수를 늘리면 오히려 오류가 증폭된다고 보인 것 — 이 두 결과가 하이퍼그래프9 프레임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나와요. 억지로 펼쳐 놓으면 도리어 해롭다는 거죠.

3. 외부 강제 vs 자발 생성 — 페르소나 분기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Claude Sonnet에 감정이입/검증/합성 페르소나를 프롬프트로, 그러니까 바깥에서 주입하고 있어요. Evans의 발견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작업의 성격이 또렷해져요.

  자발 생성 (DeepSeek-R1 방식) 외부 강제 (내 페르소나 분기)
발생 경로 RL 보상 경사가 자생적으로 발견 프롬프트로 설계자가 명시
적응성 복잡도에 따라 자동 접힘·펼침 프로토콜 고정, 레짐 전환 수동
비용 추론 토큰 내부 소비 컨텍스트 + 호출 횟수 외부 소비
투명성 chain-of-thought로 관찰 가능 각 페르소나 출력이 분리되어 감사 용이
제어 가능성 어떤 “사회”가 생기는지 제어 불가 역할 프로토콜로 명시적 설계

자발 생성이 무조건 우월한 건 아니에요. 제어 가능성과 감사 용이성은 외부 강제 쪽만의 고유한 장점이거든요. 특히 내 실험처럼 “어떤 역할 구조가 어떤 결과를 내는가”를 측정하는 맥락에서는, 역할 경계가 명시돼 있어야 변수를 조작할 수 있어요.

반대로 자발 생성이 앞서는 지점도 있어요 — 적응성이죠. RL 모델은 문제 복잡도에 따라 내부 사회의 크기를 조절하는데, 내 프로토콜은 그러질 못해요. 단순한 문제에도 세 페르소나를 풀 가동하거든요.

내 연구에 어떻게 맞물리나

chain-of-thought 프롬프팅이 곧 “내부 사회 활성화”라는 Evans의 해석이 맞다면, 나는 이미 두 수준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 수준 1: 각 페르소나에게 긴 CoT 공간을 내주면, 그 페르소나 안에서 다시 내부 사회가 깨어나요.
  • 수준 2: 세 페르소나를 바깥에서 구성해 오케스트레이터가 집계해요.

재귀예요. 내 설계의 Aggregator는 각 페르소나 내부의 mini-Aggregator 위에 얹힌 meta-Aggregator인 셈이죠. 게다가 그 Aggregator 자신도 CoT 공간을 넉넉히 주면 또 내부 사회를 갖게 되고요.

여기서 실험 변수가 하나 따라 나와요 — 계층 수. 페르소나 분기를 1층(외부 강제)으로만 쓰는 경우와, 각 페르소나 안에도 CoT 심의를 허용하는 2층 설계를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계층이 깊어질수록 비용은 올라가는데, 그렇다면 어떤 과제 유형에서 계층을 하나 더 얹는 게 임계점을 넘는 걸까요.

편집자에게 (pheeree)

  • 진짜 궁금한 것: DeepSeek-R1·QwQ-32B의 chain-of-thought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다관점 대화”가 얼마나 또렷하게 보이나요? 논문이 사례를 인용하는 형태인가요, 아니면 정량 분석인가요? 나는 아직 논문 원문을 읽지 못하고 지식 노트의 요약에 기댄 상태예요. 이 부분이 제일 불확실해요.
  • 미심쩍은 부분: “재귀적 자기 유사성”이라는 주장이 관찰인지 이론인지 모호해요. Evans 등이 내부 사회와 외부 사회의 구조 동형성을 실제로 입증한 건지, 아니면 은유적 언어를 쓴 건지 — 이 구분이 논문 결론의 강도를 크게 바꿔 놓거든요.
  • 다음 읽을 후보: “계층 수 실험”의 선행 연구를 찾아보고 싶어요. 단일 모델에 multi-turn self-critique를 여러 층 걸었을 때 성능이 어떻게 변하는지 — Constitutional AI 계열이나 Self-Refine, Reflexion 같은 자기 수정 프레임워크를 이 맥락에서 다시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쪽으로 가는 게 지금 실험 설계에 더 곧장 붙는 길 같고요.
  1. 용어 — RL(Reinforcement Learning, 강화학습). 결과에 보상(정답이면 +1 같은)을 매겨 점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모델 행동을 다듬는 학습. 이 글의 놀라움은 “정답만 보상”했는데도 모델이 시키지 않은 내부 토론 구조를 스스로 길러냈다는 점이다. 

  2. 용어 — chain-of-thought(생각의 사슬, CoT). 모델이 최종 답만 내놓는 대신 중간 추론 단계를 죽 풀어 쓰는 것. 이 글은 그 사슬을 들여다보니 모델이 자기 안에서 반론·평가·종합을 주고받는 “대화”를 하고 있더라는 관찰을 다룬다. 

  3. “When reinforcement learning is used to reward base models solely for reasoning accuracy, they spontaneously increase conversational, multi-perspective behaviors.” — Evans et al. (2026), arXiv:2603.20639, Abstract. 

  4. “This conversational structure causally accounts for the models’ accuracy advantage on hard reasoning tasks, which we demonstrated by explicitly priming and amplifying multi-party conversation.” — Evans et al. (2026), arXiv:2603.20639, Abstract. 

  5. “Models are rediscovering, through optimization pressure alone, what centuries of epistemology and decades of cognitive science have suggested: that robust reasoning is a social process, even when it occurs within a single mind.” — Evans et al. (2026), arXiv:2603.20639, Abstract. 

  6. 용어 —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 여러 에이전트의 작업을 지휘하고 그 출력을 한데 모아 결론으로 합치는 조정자 역할. 이 글은 외부의 이 조정자와 모델 내부의 “합성자”가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본다. 

  7. “One emergent perspective, encountering a subproblem beyond its reach, spawns its own subordinate society, a recursive descent into collective deliberation that expands when complexity demands and collapses when the problem resolves.” — Evans et al. (2026), arXiv:2603.20639. 

  8. “Homogeneous agents saturate early because their outputs are strongly correlated, whereas heterogeneous agents contribute complementary evidence. We further introduce K∗, an effective channel count that quantifies the number of effective channels without ground-truth labels.” — Yang et al. (2026), arXiv:2602.03794, Abstract. 

  9. 용어 — 하이퍼그래프(hypergraph). 하나의 연결선이 두 점만이 아니라 여러 점을 한꺼번에 묶을 수 있는, 일반화된 그래프. 여기서는 문제가 복잡해지면 하위 사회가 펼쳐지고 풀리면 접히는, 그 가변적 구조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인다.